성찰해야 할 역사적 이슈가 너무나 많다. 여기에는 당시 조선 정부와 개화파 지식인에 대한 평가가 그 핵심에 있었다.일본 제국이 영원할 것이라 생각했다. [중앙포토] 이 시기를 바라보면서 제기되는 가장 중요한 논쟁점은 동아시아 국가 중 일본만이 근대화에 성공한 원인과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책임 소재 문제였다.이 내용은 수백 년 동안 계속되어 온 동아시아에서 중국 중심의 국제 관계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중국 스스로 인정한 것이었다.시모노세키 조약은 청·일전쟁의 결과로 맺어진 조약이다. 강화도 조약과 시모노세키 조약 물론 이러한 주장은 19세기 말 일련의 과정을 보면 실효성이 없다.이들은 동아시아와는 너무나 다른 유럽보다는 일본을 모델로 해서 근대적인 개혁을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일본이 1876년 강화도 조약을 맺을 때부터 조선을 식민지화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일본의 한반도 내정 개입이 조선을 강한 국가로 자립하게 함으로써 중국과 러시아의 일본에 대한 위협으로부터 조선이 완충지대가 되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주장한다.율곡이 정책건의서 『동호문답』은 참으로 많은 부분에서 다산의 글과 유사하다. (『동호문답』) 정치를 통해 평화롭고 복된 세상이 되게 하고 학문을 통해 후세의 학자들이 해야 할 일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참선비라고 하였다.(‘속유론) 율곡과 다산의 참선비론은 일치한다. 재상이야 잘만 고르면 언제라도 역할을 할 수 있을 때의 말이었다.오늘의 현실은 어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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